“원래 현대기아 아니었다.” 부도나자 최진실 차범근이 나섰다는 국내 기업 최근 모습

한때 재계 8위까지 올랐지만 부도를 맞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아자동차를 기억하시나요?

현재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남아있지만 과거 부도 위기를 넘기고 회생 당시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차범근과 최진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던 삼성그룹이 탐내기도 해 삼성 음모론까지 돌았던 기아자동차는 한국 최초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기업으로도 유명한데요.

기아자동차 그룹의 시초는 자전거를 팔던 경성정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자전거 부품회사인 삼화 제작소를 설립한 이후 기아자동차 창업주인 김철호는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꾸면서 기아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52년 최초 국산 자전거인 3000리호를 비롯해 1961년에는 오토바이 c-100을 만들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데요.

이후 최초 화물차인 k360을 생산하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기아자동차가 만든 화물차는 김장김치를 운송하는 차로 유명했습니다.

이후 기아자동차는 1973년 썬공업과 동우정기를 인수하고 또 1976년 아시아 자동차까지 포함해 삼원 제작소를 만들면서 회사 덩치를 키워나갔는데요.

그러다 1996년 자동차 수출 30억 달러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재계 순위 8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합니다.

당시 기아자동차가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창업주가 아닌 전문 경영 체제를 도입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나가던 기아자동차에도 브레이크가 크게 걸리기 시작하며 조금씩 하향길로 들어섰는데요.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아시아 자동차와 기아 특수강, 기산 건설이 치열한 경쟁으로 각각 290억, 890억, 67억의 적자를 기록합니다.

여기에 글로벌 시장의 경쟁에 부실한 계열사 경영까지 겹치면서 1997년 부도를 맞고야 맙니다.

이후 19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국제 입찰을 통해 현대그룹에 인수되며 현재와 같은 현대 기아차가 탄생하게 되는데요,

전문가들은 기아자동차의 갑작스러운 부도를 두고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뽑았습니다.

우선 당시 기아자동차는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었는데요. 특히 트럭과 철강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지만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공급 과잉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주택 건설 역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인데요.

두 번째 이유는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음모론입니다. 당시 삼성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기아자동차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1993년 삼성그룹이 기아자동차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경영권 마찰이 일기도 했는데요. 삼성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던 때를 노려 정치권에 로비해 금융 지원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당시까지만 의혹에 그쳤던 음모론에 불가했지만 이후 사실로 밝혀지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습니다.

기아자동차는 부도 후 겨우 회생에 나섰지만 결국 현대자동차에 인수되고 마는데요. 관련 계열사인 아주 금속공업과 카스코, 본텍 또한 현대그룹에 합병되었고 나머지 22개 계열사들도 청산 또는 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야 맙니다.

당시 부도가 났을 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차범근과 최진실이 기아차를 살리기 위해 노 개런티로 광고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후 부도에서 회생했을 때 기아차는 감사의 의미로 차범근에게는 엔터프라이즈를, 최진실에게는 카니발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기아자동차가 아닌 현대기아차로 남아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를 이끌고 있는 기아차. 지금의 인기만 봐도 삼성이 노릴만 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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