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산다고 대놓고 무시하네” 임대 아파트 산다고 예비 입주민 단톡방에서 보란듯이 쫓겨났습니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아파트인데 한두 동만 멀리 떨어뜨려 놓거나 담벼락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게다가 편의시설을 막고, 출입구도 다르게 쓰고 있죠. 여기까지 들어보았을 땐 같은 단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바로 공공 임대 아파트와 일반 분양동을 구별 짓기 위한 설계입니다. 이 같은 ‘나 홀로 아파트’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쉽게 찾아볼 수 있죠.

2017년 입주한 서울 중구 중림동 ‘서울역센트럴자이’아파트는 ‘만리2구역’을 재개발한 단지로 지하 5층~지상 25층의 14개 동 1341가구의 대단지 아파트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이 단지는 다른 아파트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14개 동 중 13개 동은 모여있는 반면 114동만 단지 정문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죠.

114동만 혼자 동떨어진데는 만리2구역 재개발 부지가 두 곳으로 쪼개졌기 때문인데요.

누가봐도 이상한 상황은 구청이 부지 한가운데 있는 만리현 교회와 주식회사 영원무역 사옥 그리고 문화재인 정영국 생가 등을 존치하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해당 건물들이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돼 114동만 만리현교회 서쪽 부지에 자리 잡게 되고만 것인데요.

나머지 13개 동은 동쪽 부지에 모이게 되죠. 여기까지는 문화사적을 보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문제는 조합에서 나 홀로 떨어진 114동에 임대주택을 몰아넣어 ‘임대동’을 만들며 논란이 불거지게 되죠.

나 홀로 아파트가 된 임대동 주민들은 분양주택 주민들이 이용하는 단지 정문이 아닌 별도 출입구를 사용해야 하고 주차장도 분리되어 있어 노골적으로 차별을 드러낸 것이라며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개발사업에서 임대주택을 차별하는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디에이치아너힐즈’의 경우 총 23개동 중 임대주택이 들어간 2개동에만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를 마감재로 사용하며 ‘한 지붕 두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있죠.

일반 분양동은 흰색과 연회색 등 밝은 색을 주로 쓴 반면 임대주택은 어두운색을 사용하며 차이를 준 것입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 역시 일반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해, 임대 아파트 주민이 다른 동으로 건너갈 수 없게 만들었죠.

2002년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으로 ‘재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 만들어지는 아파트 세대 수의 17%를 임대주택으로 만들도록 합니다.

만일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가 임대주택을 더 짓겠다고 하면 용적률까지 높여주는 혜택을 주고 있는데요.

때문에 이제 서울에서 ‘새 아파트’를 만들 땐 ‘임대 아파트’는 필수 요건이 되었습니다.

임대주택 설치를 의무로 한데는 저소득층의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위한 것도 있지만 경제력에 차이가 있는 입주민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소셜믹스’를 위한 제도인데요.

하지만 ‘소셜믹스’를 제대로 구현한 아파트들보다 ‘낮은 층수’ ‘다른 재질의 외벽’ 등으로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의 차별을 강조한 단지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임대 아파트 차별 논란에 재건축조합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논란에 난색을 표했는데요.

재개발사업에서 임대동과 일반동을 섞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죠. 조합원분의 경우 대부분 전용면적이 59~135㎡인데 반해 임대 아파트는 30~50㎡로 면적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면적과 경제력의 차이 탓에 한동에 섞기가 어렵다는 점이 나 홀로 임대동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이죠.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한 건물 안에 층을 달리해 임대 주택을 짓는 게 진정한 소셜 믹스의 의미에 가깝다고 답했는데요.

하지만전용 59㎡ 이상으로 건설되는 일반동에 임대 층을 만들면 임대주택 거주자가 임대료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고 집도 너무 크다고 여긴다”라고 전했는데요.

조합 관계자 또한 “관리비 부과, 외벽 도색 등 비용 문제를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라며 임대주택과의 공생에 어려움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노골적인 차별로 입주민 간의 갈등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요.

최근 한 아파트 단지는 소통을 위해 입주자 전용 단체 채팅방을 개설했는데 관리자가 동호수를 조사한 뒤 임대 아파트 주민을 채팅방에서 배제하는 일도 발생하였죠.

이에 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인 임대주택 차별 설계와 시공을 막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건설업체 임원 또한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서 건설사는 단순 도급사로 조합이 요구하는대로 공사하기 때문에 임대주택 설계도 조합에서 요구하는 대로 하기 마련”이라며 “법적으로 임대주택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죠.

임대주택 이주 조건이 완화되며 임대 아파트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주거 형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색’이나 ‘길’ ‘층’으로 임대 아파트를 구분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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