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저게 머냐?” 당장 때려쳐라 말에도 무도 폐지 막은 예능 피디. 이재명 산타춤 시켰다는 최근 근황

‘양심냉장고’ ‘느낌표’까지 웃음과 감동을 함께 주는 공익 예능이 한때 우리나라 예능판을 지배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방송 트렌드를 이끌어가며 공익 버라이어티도 롱런, 히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요.

전현직 대통령마저 주말 예능에 출연하게 만들었던 획기적인 기획의 중심엔 바로 김영희 PD가 있었죠.

‘쌀집 아저씨’로 불리는 김영희 PD는 공익 버라이어티의 시초이자 예능 자막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인물 소개나 정보 소개를 했을 때 썼던 자막을 예능 요소로 삽입한 것인데요.

일본 후지 TV에 연수를 갔을 때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을 예능 요소로 쓰던걸 보면서 자막을 넣으면 생동감도 살리지 않을까 해서 자막을 집어넣기 시작하죠.

1995년 김영희 PD는 자신이 연출 중이던 ‘TV 파크’라는 프로그램에 수백 개의 자막을 사용하는데요.

하지만 현재의 자막처럼 PD가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내놓는 방식이나 재미적 요소를 가미하는 자막이 아닌 출연진의 말을 다 받아서 자막으로 만드는 방식이었죠.

방송이 송출된 후 그의 예상과 달리 시청자들은 “우리가 청각장애인이냐”라며 항의가 빗발치는데요. 직속상관마저 “제정신이냐. 미쳤냐”라며 비난을 쏟아냅니다.

이 때문에 시말서까지 썼음에도 꾸준히 자막을 집어넣는 시도를 하는데요. ‘TV 파크’는 4개월 만에 폐지의 길을 걷지만 6개월 후 대한민국 예능은 모두 자막을 쓰기 시작합니다.

김 PD의 뚝심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맡으며 더욱 빛을 발하는데요. 1996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양심냉장고’의 대박으로 일약 스타 PD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정시선을 지키는 차량 운전자에게 냉장고 선물을 준다는 콘셉트에 대해 ‘이게 무슨 재미가 있냐’ ‘톱 연예인이 나와야 시청률이 나오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라니’ 등 기획부터 강력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어렵사리 편성을 받았지만 첫 촬영부터 순탄치 않았는데요.

새벽 3시까지 한 대의 차량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았고 추위와 졸음을 이기지 못한 스태프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죠.

김영희 PD는 “해가 뜰 때까지 촬영할 것이고 주인공이 안 나타나면 내일 다시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데요.

그렇게 시간을 하염없이 흘러 새벽 4시 13분을 지나갔고 바로 그때 기적처럼 양심냉장고 1호의 주인공이 나타납니다.

주인공은 텅 빈 도로에 보행자도 없는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는데요. 초록불로 바뀌어 출발하려는 차를 김영희 PD가 직접 몸을 날려 막아서죠.

그렇게 차에서 내린 주인공은 지체장애인 부부 이종익 씨 내외였습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성실히 일하는 부부의 모습과 정지선을 지키는 이유에 “내가 늘 지켜요”라는 우문현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죠.

‘일밤’은 해당 코너의 2회에 ‘양심냉장고’ 1회분을 재방송으로 내보내는 파격 편성을 하였고, 전 국민에게 울림을 준 ‘일밤’은 시청률이 한 자릿수에서 30% 이상으로 수직 상승합니다.

양심냉장고 이후 선보인 ‘칭찬합시다’와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역시 일반인 출연자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임에도 꾸준한 인기를 얻었는데요.

전국에 어린이 도서관이 세워지고 책 판매율이 급등하는 순기능을 이끌어내었죠.

뿐만 아니라 ‘신동엽의 하자하자’ ‘얘들아 행복하니’ ‘눈을 떠요’ 같은 코너는 0교시 폐지와 전 국민적인 장기기증서약 동의를 이끌어내며 선한 영향력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합니다.

뛰어난 연출 능력으로 MBC 최연소 예능국장까지 오른 김영희 PD는 또 하나의 업적을 써 내려가는데요. 바로 국민예능 ‘무한도전’의 폐지를 막은 것이죠.

당시 시청률이 바닥을 기고 있었던 무한도전에 대한 교체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고 가는 와중에 김 PD가 직접 “다른 거는 내가 다 바꿔도 이건 안 바꾼다”라며 결사반대에 나선 겁니다.

김 PD는 “지켜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시청 습관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을 계속 본다고 생각했다”라며 밀고 나간 이유를 전했고 유재석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죠.

예능국장 자리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는데 망설임이 없었는데요.

2011년 아마추어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던 예능 판국에 프로들의 경쟁을 이끌어냈던 ‘나는 가수다’는 화제성과 시청률 모두를 잡으며 역대급 히트를 치게 됩니다.

이후 ‘나가수’의 포맷을 중국 후난위성 TV가 구입하였고 김 PD는 제작 노하우 전 수차 중국을 건너가는데요.

남다른 중국 시장에 가능성을 본 김영희 PD는 과감하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죠.

한국 PD 최초로 중국 현지에 외주제작사 B&R을 세운 김 PD는 2016년 후난위성TV 예능 프로 ‘폭풍효자’를 선보입니다.

중국의 연예인들이 자신의 고향 혹은 부모의 고향에 가서 부모와의 일상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사생활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중국 연예인들을 설득하는 극한의 과정을 거쳤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이 터집니다.

12부작 제작비가 무려 400억이 들었던 ‘폭풍효자’는 800억 수익에 순수익만 200억 원을 기록하였고 김 PD의 중국 진출은 대성공을 거두죠.

하지만 그 역시 중국의 ‘한한령’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못하게 되자 결국 다시 한국으로 복귀를 선택하는데요.

2018년 11월 MBC로 돌아온 김 PD는 콘텐츠 제작 부문 총괄역을 맡기도 하죠.

그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는데요.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홍보소통본부장을 역임합니다.

방송계를 넘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죠.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불만 노래해 나도 가수다’를 진행해 국민과 소통하는 후보의 모습을 부각시키기도 했는데요.

‘이재명 부부 캐럴’ ‘랜선일출’ 등 예능 PD의 능력을 선거대책본부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정치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김 PD의 결정이 최고의 수가 될지 최악의 수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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