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에 복분자까지” 암수술 전날까지 진료. 분당 만원 버는 오은영이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까지 상담하는 이유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하면 역시나 아직까지는 ‘뽀통령’ 뽀로로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하지만 요즘에는 아이와 부모 모두의 구원투수인 오은영 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육아전쟁으로 고통받는 부모와 아이들의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기 때문인데요.

‘생각하는 의자’나 ‘금쪽이’같은 단어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죠. 오은영 박사 덕분에 요즘은 육아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오은영 박사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요.

2008년 담낭과 대장에서 이상 징후가 있어 병원을 찾은 오박사에게 담낭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이 내려진 것이었죠.

담낭과 대장은 암에 걸리면 완치가 너무나도 어려운 부위로 유명한데요.

오박사의 경우 초음파로 봤을 때 90% 이상 담낭암이 확실하다는 말과 함께 6개월의 시한부가 선고되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보험이나 통장을 싹 정리할 정도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고 하죠. 하지만 주변 정리를 하고 수술을 앞둔 와중에도 수술 전날까지 진료를 했다고 하는데요.

병원에서 독촉 전화를 받고서야 입원을 할 정도로 그때부터 환자를 위한 책임감이 투철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오박사는 또 한번의 위기를 겪었는데요.

담낭암도 모자라 앞서 받았던 조직검사 결과 대장암 확진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한부가 6개월이 아니라 3개월로 확 줄어버렸죠. 하지만 수술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너무나도 다행히 담낭의 종양은 암이 아니었는데요.

게다가 대장암도 겸사겸사 검사를 한 덕분에 극초기에 발견해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스트레스가 심해 오히려 슬럼프가 찾아오고 말았죠.

수술 후 겨우 4일만에 복귀한 오박사는 평소처럼 환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힘든 이야기들을 들어서 암에 걸렸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도 덩달아 약해진 것이었죠. 환자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면서 슬럼프에 빠져버린 오박사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환자의 가족이었습니다.

상담을 위해 병원에 다니던 아이의 엄마가 오박사의 마음을 돌린 주인공이었는데요.

원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식사를 못하시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말과 함께 6개나 되는 반찬통을 꽉꽉 채워 건네준 것입니다.

여기에 항상 올때마다 친정에서 받은 귀한 기장미역이나 복분자 원액을 챙겨오고는 했는데요.

오박사는 덕분에 사람으로 지쳤던 마음이 한순간에 녹아내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꿰뚫는 심리전문가도 결국 사람으로 상처받고 다시 사람 덕분에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 것인데요.

그 이후로 오박사는 지금까지 매일 밤 10시까지 진료를 받고 수많은 강연과 방송에 출연하는 천하무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상 특유의 에너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어 방송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가 줄을 잇고 있는데요.

10분에 9만원이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매달 진료 예약일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들여 전화를 해대야 겨우 예약을 잡을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인터넷에는 실제로 오은역 박사에게서 진료를 받은 부모의 간증글도 많이 올라와 있는데요.

아이 때문에 안가본 병원이 없고 안받아본 상담이 없었다는 한 부모는 ’90분의 진료를 위해 지불한 81만원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금액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무료 특강도 모자라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긴급 상담을 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요.

한 방송에서 오박사는 ‘휴게실 화장실에 들렀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더니 오은영 박사님이 맞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남다른 대처를 하는 모습이 화제였죠.

화장실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찾으면 곤란함이나 짜증이 앞설 법도 한 상황일텐데요.

오박사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화장실에서까지 상담을 받고 싶어할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몸은 변기에 앉아있지만 입은 놀고 있으니까 상담을 기꺼이 해드렸다’고 밝히기 까지 했죠.

오박사는 이렇게 시한부 선고라는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을 겪고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그녀가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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