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대기를 확” 후배 손찌검 했다. 소문에 정국진과 해외로 도피.. 애 못 낳는다고 결국 버림 받았다는 최근 근황

강수지, 김완선, 이상은, 박정현… 역대급 솔로 여자 가수들이 탄생했던 시기인 1980~1990년대.

대학가에서는 그들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즐비했는데요. 누군가는 이들을 사랑했지만, 또 누군가는 매우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금과 달리 안티 팬에 대한 도덕적 인식이 적었던 1980~1990년 시절에는 정말 수위 높은 비난이 오가기도 했는데요.

‘그러지말고 그냥 은퇴해라’, ‘저 가수 볼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 등 안티 팬들의 저격글들은 수많은 연예인들을 상처입히기도 했습니다.

여기, 데뷔하자마자 폭풍같은 인기를 끌었지만 그만큼 많은 안티 팬을 형성하며 악플에 시달리다가 은퇴한 비운의 여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책받침 여신이라고 불렸던 가수 이지연입니다. 1988년 19살의 어린 나이로 일찍이 연예계에 데뷔한 이지연은 청순한 이미지로 단숨에 슈퍼스타 자리에 올라섰는데요.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발라드를 부르는 그 모습에 많은 남성들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하죠.

이지연의 사진을 책받침으로 하고 다니는 남고생들이 수두룩했을 정도로 인기는 굉장했는데요.

데뷔곡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히트친 뒤 이어서 ‘난 아직 사랑을 몰라’라는 후속곡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데뷔한 해에는 KBS 가요대상에서 무려 신인가수상을 차지하였다니, 대중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인정한 노래 실력이 아닐 수 없죠.

안타깝게도 이지연은 다른 여가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성팬층이 적었는데요.

그가 2집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말도 안 되는 루머에 시달리게 되면서 얼마 없는 여성팬들도 뒤돌아서고 오히려 많은 안티 팬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돌았던 루머는 바로 가수 이상은과의 관계인데요. 이지연이 당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동갑내기 가수인 이상은을 때렸다는 루머가 돈 것입니다.

‘이지연이 선배 노릇을 하며 이상은의 뺨을 때렸다’는 소문은 평소 가녀리고 청순한 이지연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사자인 이지연과 이상은 모두 사실이 아닌 거짓된 소문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다고 하는데요.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며 이상은의 팬들이 이지연에게 수위 높은 악플과 행동을 보이자, 이상은이 나서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1989년에 발매된 이지연의 2집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치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는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그에게 골든컵을 안겨주었습니다.

1989년은 그야 말로 이지연의 해라고 할 수 있는데요, MBC와 KBS에서 10대가수상과 올해의 가수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그 저력을 알렸습니다.

이지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수록 안티 팬들의 극성도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가 지방 행사를 가면 환호 대신 야유가 쏟아졌고 은퇴하라는 악플에 끊임없이 시달렸다고 하죠.

심지어 어떤 안티 팬은 ‘언니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다가와 머리에 껌을 붙이고 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이지연은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살이 48kg에서 40kg까지 빠질 정도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하는데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가수에 대한 열정이 컸던 이지연은 1990년에 3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이지연을 반기기도 했지만 그를 둘러싼 루머를 더욱 반겼는데요.

3집 활동 중에 무려 11살 연상이었던 가수 정국진과 스캔들이 터졌고, 결국 이지연은 정국진과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이지연은 요리를 공부하고 정국진은 사업을 하며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고 하는데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둘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결혼한지 18년 만인 2008년에 둘은 이혼하며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죠. 이혼 이후 이지연은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놀랍게도 가수로서가 아니라 요리사로서 명성을 떨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프랑스 명문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에 진학하여 미국 애틀란타에 레스토랑을 오픈하였죠.

하루 4시간씩 자면서 공부했던 노력이 보상받게 된 것일까요, 이지연의 레스토랑은 무려 월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죠.

바비큐 전문점인 이지연의 레스토랑은 2014년 USA투데이가 선정한 ‘애틀랜타 톱 6’에 꼽히고 2016년 이터닷컴이 선정한 ‘미국의 대표적인 바비큐 요리 23’에도 소개되었습니다.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그의 레스토랑을 칭찬하고 최고의 바비큐 식당으로 꼽는다고 하죠.

아팠던 과거를 극복하고 요리사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새로운 사랑도 한 몫 했다고 합니다.

이지연은 9살 연하인 르꼬르동 블루 동창과 두번째 결혼을 올리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둘은 2018년 애틀란타 100대 셰프에 당당히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상에 올랐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못했던 비운의 가수.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한 모습이 아름다운데요.

앞으로도 이지연이 계속해서 성공은 물론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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